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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동순
ㆍ작성일	2010-04-14 (수)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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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말을 엿듣다

산의 말을 엿듣다 / 이동순

비오는 날
인간들 발길이 뜸해지자
누웠던 산은 그제서야 젖은 몸으로 부시시 일어나
지금껏 참아온 말들을 서로 지껄인다

옛사람들은 큰 산을
문중 어른 뵈러가듯 어렵게 여겨
오르기 전엔 몸을 씻고 올라선 몸가짐도 다소곳했는데
닥치는 대로 깨어부수고
손가는 대로 집어삼킬 뿐 아니라
만나기만 하면 그저 으르렁거리는 요즘 것들은
즤들 사는 곳을 모조리 망가뜨려놓고
드디어는 이곳 멧부리까지 찾아와
온통 깨고 뒤엎고
찍고 허물고 버리고 더럽히니
독한 인간 발 닿는 곳에 남아날 것 하나 없다던
전해오는 옛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닐세그려
여보게 뒷산
나나 그대나 우린 이제 다 산 목숨이오
저놈들 손에 죽느니 우리가 먼저 죽어버립시다

지난 여름 내내
버릇없는 인간들 등살에 시달리다
모처럼 비가 와서 조용한 오후
앞산 뒷산이 호호백발 두 늙은이의 대화처럼
지친 목소리로 저물녘까지
두런두런 중얼거리고 있는 것을
내 어느날 엿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