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빛연대
벼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벼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곡식은 하늘의 뜻으로 땅에서 피어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은 그 곡식을 가꾸고 거두어 만든 밥(빵)으로 스스로를 살리고 하늘에 고마운 뜻을 올린다. 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인간의 모습이다. ‘밥(빵)은 하늘이다’, ‘나는 생명의 떡(빵)’이라는 말을 누가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해월이 했고, 예수가 했지만, 그 이전의 인간들도 했을 것이다. 말이 없었다 해도 삶은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하늘이 준 것을 인간이 피땀으로 가꾸어 하늘과 인간이 나누어 먹었다. 밥과 술과 빵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자 나누어서 생명을 돌보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말이 나온 것은 탐욕과 착취, 억압을 자행한 인간들을 되돌려 보려는 간절한 뜻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지하 시인의 메시지에서 느낀 이야기다. 이성아의 『쌀 박물관』이라는 책 속에는 옛날이야기 ‘바가지 속의 쌀’이 실려 있다. 간추리자면, 한 농부가 굶어 죽을 지경에서 부인의 머리채를 팔아 쌀을 바꾼다. 돌아오는 길에 또한 굶주린 농부가 개구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농부는 쌀을 주고 개구리가 담긴 바가지와 바꾸고는 개구리를 방생한다. 빈 바가지를 들고 와서 굶주린 자녀들과 누워 죽기를 작정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바가지에서 자꾸만 쌀이 생긴다. 농부는 굶주린 이웃들에게 쌀을 나누어 준다. 흉년이 끝나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잘 갈무리해서 벽장 속에 보관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제사 때가 되면 바가지에 쌀이 수북 담겨 있다. 여기까지다.이 민담 속에서도 쌀은 생명이요 나눔이며 하늘에 돌리는 정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이나 민중이나 쌀을 대하는 마음은 한 가지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밥이 하늘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그 하늘을 만들어내는 농부들에게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권정생 선생의 일갈이다. 하늘을 뿌리고 하늘을 가꾸고 하늘을 거두어 인간에게 하늘을 먹이고 하늘에 온전한 하늘을 돌려주는 농민들이 고통 받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농민들이 가꾼 그 하늘로 죽을 쑤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 굶주린 사람들에게 옥수수 한 알이라도 나누어 주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울’과 ‘한 알’이 닮았다. 하늘을 가꾸는 농민을 하느님이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밥이 되기까지 쌀은 도대체 하느님들이 어떻게 가꾸는가. 쌀이 이 땅에 들어온 지는 삼천 년 정도 되었다. 삼국시대에 저수지를 이용한 논농사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 경작기술을 정책적으로 보급을 했고 조선시대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을 내세워 농본국가로 정착했다. 쌀은 하늘이 준 생명의 선물이고 밥은 인간이 하늘에게 되돌려주는 생명의 화답이다. 그러나 쌀이 밥이 되는 그 짧은 ‘틈’새에서 인간은 온전한 생명과 지극한 착취로 나누어진다. 잉여와 결핍, 만족과 부족은 대립과 전쟁을 낳는다. 어느 배에서는 함포고복의 북소리가 높아가고, 어느 배에서는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강물 소리가 시난고난 졸아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농민들은 계절에 순응하며, 행여 놓칠세라 절기에 따라 부지런히 논과 밭을 오가며 하늘을 가꾼다. 대체로 몸으로 일하던 오래 전과는 달리 기계화 되었지만 계절을 좇아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청명 무렵이면 논을 갈고 물을 가두어 논을 논답게 적신다. 곡우 무렵에는 잘 갈무리해 둔 볍씨를 소금물과 양잿물로 고르고 소독한 다음 물에 불려 싹을 틔운다. 요즘은 대부분 육모상자에 직파해서 싹을 틔운다. 살짝 싹이 트면 못자리에 옮긴다. 못자리는 논 가운데서도 햇볕이 바르고 수온 변화가 적은 곳에 만든다. 못자리에서 한 달 정도 지나면 잘 가꾸어놓은 잔디밭 같다. 모를 쪘을 때 허리춤을 거머쥐면 뿌리만큼 잎이 남으면 적당하다. 물론 때를 같이 하여 논을 삶는다. 예전 같으면 소를 몰고 쟁기로 논을 갈아 물을 충분히 댄 다음 가래질을 한다. 요즘은 쟁기와 써레가 하던 일을 트랙터로 신나게 해치운다. 논두렁을 만들고 붙이는 일은 일손이 필요하다. 모내기와 추수는 벼농사에서 가장 큰 일이다. 예전에는 두레와 울력으로 마을 축제 같이 신명떨이를 했다. 요즘은 이앙기가 다녀가면 그만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덜던 소리도 춤도 없다. 뜬 모나 남은 곳에 손모를 심는 일손이 한가할 지경이다. 벼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 물 관리와 피사리, 방충해, 거름의 정도를 살피며 여름을 보낸다. 칠월 검은 논 집에는 딸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너무 부지런을 떨어도 잎만 무성하여 소출이 적다. 적절한 관리가 풍성한 가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이 여름내 자신을 돌봐준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가을볕에 영글어 자신을 키워준 땅에게 경배할 때쯤이면 추수를 한다. 이즈음이면 농부들이 여름 내내 흘리던 땀도 영근다. 예전의 흥청대던 추수 마당은 콤바인이 대신하지만 소출을 보는 농부의 마음은 여전할 것이다. 이즈음이 되면 농촌에는 빠끔한 곳이 없다. 틈만 나면 알곡을 말리느라 죄다 널어놓았기 때문이다. 쌀이 하늘의 뜻으로 인간의 손에 가꾸어져 하늘이 되어 밥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일손이 더해진다. 쌀 미(米)자를 풀어 쓰면 88(八十八)이다. 볍씨가 쌀이 되기까지 농부의 손이 그만큼 간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기계화가 되었다고 해서 농부들의 일손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농촌공동체가 붕괴되고 농사도 고독한 직업이 되었다. 신명도 웃음도 사라진 들판에서도 농민들은 돈보다는 하늘의 뜻을 가꾸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함민복 시인은 시 「긍적적인 밥」에서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고 읊었다. 시 쓰는 삶의 자족과 농민들의 노고에 비해서 헐한 쌀값에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표현했다. 볍씨와 나락과 쌀과 밥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농부들의 노고는 기본이고 그 안에 하늘의 뜻인 생명 살림과 나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안상학 시인 |
| 
|
벗풀
풀빛연대
단체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