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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풀빛연대
작성일 2011-05-02 (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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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광화문 논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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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문화

논과 문화


                                                                                                                           유영초


1.
논이 뭐냐? 고 묻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마치 밥이 뭐냐고 하는 것만큼 우스운 질문이겠지만, 모든 먹을거리들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원산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도시의 며느리가 농촌의 시어머니한테 ‘기왕이면 붉은 고추를 심지 왜 풋고추를 심었느냐’고 했다는 이야기처럼, 앞으로는 점점 더 밥의 원산지인 논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또 설령 논이 쌀을 생산하는 곳인 줄 안다고 할지라도 그저 쌀이 생산되는 곳이라는 정도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반쪽이다. 그것은 논을 그저 햄이나 소시지 공장처럼, 그저 먹을거리를 출력하는 곳이거나 재배식물을 ‘사육’하는 공간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은 식량을 생산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공적 공간과 자연공간을 아름답게 매개하며 경관을 유지시키고, 풍부한 담수기능과 탄소흡수, 기후조절 등의 기능을 통해서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논의 기본적인 기능인 식량을 생산하는 경제적 기능과 환경보전기능 뿐만이 아니라,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고 계승발전 시켜나가는 최후의 보루로서 논의 문화적 역할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논도 얼마나 식량을 많이 생산하느냐는 기능적 이해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환경 생태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고, 좀 더 나아가서는 정신을 살찌우는 문화적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공해 문제 등으로 농업과 농촌 그리고 그 중심인 논의 환경생태적인 보완기능이 중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또 주5일제 등의 사회변화에 따라 관광과 휴양 문화적 기능의 새로운 비전이 요구되고 있는 지금, 논의 문화적 역할을 강조되는 것도 하나의 흐름일 것이다.


2.
논이 뭐냐? 는 것을 사전적 정의한다면, “물을 가두어 쌀을 재배하기 위하여 만든 바닥이 평편하게 고르고 둘레를 둑으로 막아 물 잡을 데와 물 나갈 데를 만들어놓은 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렁으로 둘레가 쳐진 구획단위를 배미라고 한다. 한 배미, 두 배미 혹은 이 배미 저 배미 하는 노래처럼 그 넓이와 상관없는 구획 단위이다. 물을 잡고 놓은 곳을 물꼬라고 부른다. 물이 들어오게 하고 물이 나가게 하는 것은, 일상에서도 비유되는 말이지만, 논의 숨구멍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흔히 답답하고 꽉 막힌 관계나 일이 풀렸을 때 물꼬가 트였다고 한다.

논의 종류로는 논의 형태에 따라서 부르는 말도 있고, 위치에 따라서 부르는 말도 있다. 또 가두어 놓은 물의 정도에 따라서 분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물이 늘 있는 논을 무논이라고 하고 진논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표기할 때는 습답이겠고 이와 반대로 물이 거의 없는 논은 건답이라고 한다. 흔히 보리논이라고 부르는 경우이다.

위치에 따라서는 골짜기에 있는 논은 구레논, 해안갯가에 있는 논은 갯논, 물이나 수원에 따라서는 비가 와야만 되는 논은 천둥지기, 천수답, 하늘바라기 등으로 부른다. 또 아예 논에서 물이 나는 논은 고래논, 고래실 등으로 부른다.

쓰임새에 따라서는, 물을 끌어오기 위한 논을 물잡이 논이라고 하고, 수확해서 향제에 쓰기 위한 논은 위답(位畓)이라고 하고, 말먹이로 쓰려고 하는 논은 마위답(馬位畓)이라고 한다. 논의 모양에 따라서 직답(直沓) 방답(方沓) 제답(梯畓,사다리논, 다락논), 규답(圭沓) 등으로 구별하기도 하고, 부쳐먹는 사람에 따라서 사래논이라든가, 소유주에 따라서 공답, 민답, 동답, 경답 등의 구분이 있다.

3.
논이라는 말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하는 것도 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한편 논의 어원을 추적하는 것은 논에 심는 가장 주요한 작물인 쌀의 기원과 문화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벼농사의 기원설은 크게 인도 북부의 아삼 기원설, 중국 남부의 운남 기원설, 동남아시아의 기원설 등 학설이 다양하다. 지금도 베트남 남부의 메콩델타지역에서는 야생벼가 자라고 있으며 장대 끝에 낫을 달아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논 문화의 전파 시기나 경로가 정설인 것은 없다. 어떤 일본학자의 경우는 일본을 거쳐 농경문화가 전해졌다고도 주장한 바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잇따른 농경유적의 발굴에 의해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볍씨(약 1만5천년)로 알려졌다. 중국 에서 발견된 볍씨(약1만5백년)보다 약 4500년 정도 오래된 것이다.

더구나 이 볍씨가 야생벼가 아니라 재배 벼라고 하는 것은 이미 1만5000년전에 한반도 중부에서 농사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튼 대체로 벼의 기원설은 인도의 아삼에서 미얀마 및 라오스의 북부를 거쳐 중국의 운남성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벼의 기원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로 전파되어 온 것으로 보는 설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인 것 같다.

이러한 견해는 벼나, 쌀, 그리고 논의 어원을 추리해보는 것으로서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인도에서 벼를 ‘브리히’라 하는데 이것을 벼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만주와 함경도에서 벼를 ‘베레’ 또는 ‘비레’라 한다고 알려져 있다. 동남아에서는 벼를 바디, 빈히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또 쌀의 경우도 고대 인도어에서의 ‘살리’라는 말로, 퉁구스어에서는 ‘시라’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앞서의 브리히와 살리를 합친 ㅂ ->브->읍->닙쌀->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논의 경우는 중국남부에서는 니, 누안 등으로 불리는 것을 두고 한국의 도작문화, 즉 쌀 농사 문화가 중국 운남성에 기원하고 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稻자의 음이 緩인데, 이것을 暖(누안)으로 읽었다고 한다. 또 니(秜)는 중국에서 자생하는 야생벼를 말하는데 이것이 유래되어 우리의 논이나, 쌀겨를 의미하는 뉘로 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이 경로를 통해서 일본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라고도 본다. 즉 중국 오나라 사람들은 맛좋은 벼(善稻)을 일컬어 이난(伊暖)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전해져서 ‘이네’(벼)라는 일본말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 한국과 일본의 논과 관련된 언어의 유사성도 있다. 우리의 밥이나 진지의 고어는 메이고 일본에서의 밥은 메시이다. 또 고메라는 말도 있다.


4.
논 그리고 논에서 수확하는 쌀은 아시아 전통문화의 핵이다. 논 농사문화의 기원지로 이야기되는 동남아지역에는 벼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는 쌀이 죽은 여자의 몸에서 생겨났다는 신화도 있는데, 죽은 여자의 몸에서 조, 야자, 코코야자 등의 재배식물과 함께 벼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규태의 글에서 보면, 이와 비슷한 신화가 나온다. 일본의 옛 문헌 ‘고사기(古事記)’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즉 한반도에서 건너간 여신인 보석신이 죽자 머리는 밀로 변하고 눈썹은 누에로, 피는 피로, 배는 벼로, 국부는 보리로 변했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말의 어감이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농경문화가 전해졌다는 방증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예전에 자기나라를 ‘논의 나라(토요아시하라 미즈호)’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천황은 쌀의 여신의 후예라고 하여 지금도 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쌀은 생명이다, 라고 하는 것은 단지 지금의 구호가 아니다. 쌀을 지어먹고 사는 아시아인들에게서 쌀은 하나의 인격체였다. 라오족 같은 경우 벼농사가 단지 재배적인 기능이 아니라 초자연과 밀접하게 결합된 종교적 행위로 여길 정도였다.

특히 벼는 모성적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아마도 모성의 다산성과 생산력을 기원하는 의식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다. 수확 후에 마지막 볏단에는 쌀의 신이 머문다는 믿음이나, 추수 후에 볏단으로 벼의 어머니 형상을 만들어 축복하는 것은 그런 제의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신성하게 여기는 것만큼, 그 신성한 것과 공간에는 터부가 있게 마련이다. ‘생쌀을 먹으면 어머니가 죽는다.’,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 ‘쌀을 씻을 때 흘리면 유산(産)을 한다.’, ‘키질할 때 쌀알을 날리면 남편이 바람난다.’ 등 속신들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속신들은 교육적 윤리적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에게 쌀=밥은 처음이자 끝이다. 의식의 기본인 인사는 밥을 먹었느냐는 것이었고, 죽는 것은 밥 수저를 놓는 것이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도 쌀을 먹었느냐는 것이 인사라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것은 쌀이 곧 사람의 심성과 마음을 좌우한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그 쌀을 생산하는 공간을 가진 정도가 부의 척도였다. 천석꾼이며 만석꾼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5.
문화는 인간이 자연을 일구어서, 자연과 인간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문화는 영어로 culture이다. 이것은 경작하다고 하는 cultivate와 그 어원이 같다. 즉 농사를 짓는 것이 문화였던 것이다.

흔히들, 야만인 혹은 미개인의 상대적 개념으로 문화인이라고 한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던,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타개한 것은 비로소 “경작”이라는 진보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비로소 동물과 차별화되는 “문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어원이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갖는다는 것은 자연을 경작하는 지혜를 갖는 것과 같다. 우리가 논의 문화를 다시 생각하는 것도 진정한 자연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경작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논이 주는 환경 생태적 의의도 다만, 공기정화의 기능이라든가, 담수와 기후조절과 같은 환경공학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그물에 대한 자각,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람을 지탱하고 있는 식물과 동물에 대한 관계망의 깨달음에 더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생태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의 그물망을 읽고 보지 못하는 상황을 알도레오폴드는 생태적 장님(Ecological Illiteracy)이라고 부른다. 논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총체적 관계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생태적 장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라고 하면 좁은 의의로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예술적 장르로 이루어진 가치의 형상물이 될 것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자연의 현상에 인위적 행위가 가해지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닌 신념이나 사회적 가치도 포함하여 이루어지는 대단히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대체로 자연으로부터 혹은 사람들로부터 이루어지는 가치의 형상물, 또는 그 신념이나 사회적 가치를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논과 문화의 영역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논의 문화도 그 지역의 지리적 생태적 특성을 반영하는 논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가치의 형상물이나, 민속과 전통 그리고 생명이나 생태적 가치의 신념 등을 포괄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논은 우리 겨레의 생체리듬과 생활리듬을 조율하는 4계절 12달 24소시의 모든 문화적 콘텐츠들과 연계되어 있다.

나에게 논이 주는, 논이 갖는, 문화적 의의 중에서 가장 잘 떠오르는 것은 논 풍경의 미학적인 요소이다. 논은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아름다운 공간이다. 풍경(Landscape)은 시청각에 각인되는 자연의 요소들인데, 사시사철 물과 바람과 벼가 논에서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표현되기 어려울 정도이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배우기 이전에 자연에게서 배우고, 또 배워야한다. 건축가 가우디는 ‘예술에서 창조라고 하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인간의 인식이전에 존재하고 기능했던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을 때 비로소 건축도 생명력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축조한 논이야 말로 인류사에 가장 오래된 미래이자 가장 위대한 문화인 것이다.


6.
우리의 일상의 많은 영역이 디지털화(Digitalization)되어 가고 있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는 몰라도 인터넷 동호회의 일촌 사생활은 너무도 친근하고 잘 아는 새로운 유형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이러한 현실의 긍정과 부정의 인식을 떠나서, 디지털화 되어있는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차이’가 곧 가치라는 점이다. 무엇이든 카피되는 이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원형과 원본이며, 정체성(Identity)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노나카 교수에 의하면,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형식적인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암묵지(暗黙知)이다. 형식지(形式知)는 디지털적인 지식으로서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지식으로, 문법적인 진술이나 수학적인 표현, 규격이나 매뉴얼 등의 지식이 될 것이다. 한편 암묵지라고 하면 아날로그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영감으로 체득된 지식을 말한다.

디지털시대에는 오히려 이러한 암묵지가 더욱 중시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화 될 수 있는 논리와 지식보다는 감성과 경험으로서의 암묵지야말로 디지털이 추구하지 못하는 질(質)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논은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며 일구어낸 최고의 아날로그로서 살아 있는 교실이며 디지털의 전범이다. 논은 우리시대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살아있는 생명의 보육공간이고 생태학 교실이며 문화의 창고이기 때문이다.

차이와 개성, 정체성(Identity)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가는 문화콘텐츠의 진수이다. 논과 자연에 이 문화콘텐츠가 있다. 그것이 없다면, 신화와 전설과 문화를 품지 않은 논이라면, 소시지 가공공장과 육계사육 공장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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